자극과 혼란의 시대 한쪽에서는 ‘무해함’의 미덕이 주목받고 있다. 나를 공격하거나 괴롭히지 않고, 보고 있기만 해도 행복과 위안을 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보통 작고 귀엽고 순수하고 악의가 없다. 아기, 동물, 인형, 캐릭터가 대표적이다. 둥글고 통통하고 복슬복슬한 특징을 지닌 귀여움에 우리는 쉽게 무장 해제되고 만다.
사실 이와 같은 감정은 본능적이다. 오스트리아 동물행동학자 콘라트 로렌츠(Konrad Lorenz)는 일찌감치 ‘귀여움 이론’을 통해 “인간은 대상의 외형적 특징에서 귀여움을 느낀다”고 밝혔다. 넓은 이마, 큰 눈, 각지지 않고 둥글둥글한 형태 등 아이와 닮은 모습을 귀여움의 원형으로 꼽았다. 영국의 심리학자 케빈 더튼(Kevin Dutton) 역시 아기 사진을 보면 쾌감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즉각적으로 활성화된다고 밝혔다. 노란 원에 점과 선만으로 웃는 표정을 표현한 스마일 로고가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요즘 사람들이 귀여워하는 것들
무해함의 대표 주자인 ‘아기’를 내세운 콘텐츠는 꾸준히 사랑받아왔다. ‘아빠! 어디가?’, ‘슈퍼맨이 돌아왔다’와 같은 아이 출연 프로그램은 어른들의 힐링 콘텐츠로 통한다. 최근에는 유튜브 콘텐츠 ‘태요미네’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2021년생 충청도 베이비 태하의 구수하고 순수한 일상 대화만으로 미소가 지어진다.
동물도 빠질 수 없다. 특히 푸바오의 인기는 신드롬에 가까웠고, 반려동물 SNS 채널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루퐁이네’, ‘진똑개 풍이’ 등 개플루언서가 등장하고 반려 고양이들과의 코믹한 순간을 포착한 ‘언더월드’의 구독자도 급상승 중이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는 성인들의 마음까지 움직인다. 그 1세대인 자이언트 펭귄 ‘펭수’는 어른들과 공감대를 이루며 성장했고, 헬로키티와 시나모롤 등 산리오의 장수 캐릭터는 세대를 뛰어넘어 사랑받고 있다. 최근에는 둥글둥글한 외모로 무심한 듯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캐릭터 ‘망그러진 곰’이 각종 팝업 스토어와 콜라보의 주인공으로 떠오르고 있다. 누군가를 해치고 이기는 게임이 아니라 반려 캐릭터와 함께 걸으며 성장하는 증강현실 걷기 게임 ‘피크민 블룸’ 이용자가 빠르게 느는 현상도 주목할 만하다.


‘태요미네’는 충청도 특유의 구수한 화법을 구사하는 5살 태하의 브이로그다. 구독자들의 인기에 힘입어 각종 광고와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루퐁이네’는 포메리안 자매 루디와 퐁키의 일상을 담은 채널로, 현재 약 227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진똑개 풍이’의 주인공인 진돗개 풍이는 약 47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해 반려견계의 슈퍼스타라고 불린다. 최근에는 바자회를 열기도 했다.


‘언더월드’는 코미디언 송하빈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로, 고양이 집사 콘텐츠와 코미디를 결합해 다양한 패러디와 상황극을 선보이며 사랑받고 있다.




‘망그러진 곰’은 2023년 초 카카오톡 무료 이모티콘에 선정되며 큰 인기를 얻은 후 단행본 출간, 굿즈 제작, 인스타툰 연재 등으로 영역을 확장해가고 있다.


‘피크민 블룸’은 2001년 닌텐도에서 출시한 게임 ‘피크민’의 캐릭터들을 활용해 만든 모바일 게임이다. 게임에 접속한 상태로 산책을 하면서 증강현실 기능을 통해 피크민을 발견하고 키울 수 있다.

작지만 확실하고, 순수하지만 진솔한 치유
우리가 무해함에 빠져드는 이유는 그만큼 상처받고 있다는 외침일지도 모른다. ‘긁?’이라는 유행어의 등장은 수시로 누군가의 신경과 마음을 긁고, 이를 오락거리나 힘의 우열로 판단하는 세태를 보여준다. 긁힌 상처를 아물게 하는 치유의 약이 무해한 존재들이고, 여기에는 서로 해치지 말자는 외침도 함께 담긴다. 날 선 유해함의 반작용으로 순수한 무해함이 주목받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이러한 요구를 발 빠르게 수용하고 있다. 소비자를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마케팅 대신 ‘원하는 대로’, ‘언제든지’ 등 부담은 줄이고 공감과 배려에 초점을 맞춘 메시지에 공을 들인다. 제품 자체에 자극을 빼는 노력도 더욱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패션에서는 편안하고 단순한 기본 핏의 유행이 오래 지속 중이고 친환경 원단을 내세운 브랜드도 늘고 있다. 뷰티 업계에서는 일찌감치 저자극 원료가 인기를 얻었다. 최근에는 동물실험을 하지 않고 식물성 성분만을 사용한 비건 화장품이 주목받고 있다. 동물, 아기, 귀여운 캐릭터와의 콜라보로 시선을 끄는 마케팅도 쉽게 눈에 띈다.
요즘처럼 긴장과 갈등이 고조되는 시기, 날 선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 전에 마음을 녹여줄 무해한 존재들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일상의 작고 소중하고 귀여운 존재의 힘은 생각보다 강할 테니 말이다.